추풍령(秋風嶺)은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과 충청북도 영동군 추풍령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높이는 해발 221m이다. 이 지점(당마루마을)을 당마루고개라 불리우기도 하는데 바로 이 고개가 추풍령이다. 추풍령의 또 다른 이름은 백령(白嶺)이다. 과거 추풍령 인근 지역에서는 메밀을 중심으로 농사를 지었는데 이 백령이라는 별칭은 새하얀 메밀꽃이 고갯마루를 뒤덮은 흰 고개라는 의미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 말 추풍령 일대의 행정구역 명칭은 경상북도 김산군 황금소면이었는데 황금소면이라는 지명은 추풍령 역참에 황금소라는 관리 숙소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황금’이라는 지명은 현재의 영동군 추풍령면 사부리에 있는 황보(黃寶)와 금보(金寶)라는 마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905년에는 경부선 추풍령역이 개통되었으며, 1906년에는 지방관제 개편 당시에 충청북도 황간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부군면 폐합에 따라 매곡면 일부와 상주군 공성면의 일부를 병합하여 황금면으로 개칭되면서 영동군에 편입되었다는 과정이 있다.
직지사에서 신암을 거쳐 추풍령에 올라오기까지 철도경사가 급한 오르막인 고바이 길이라서 디젤기관차가 나오기 전(1968년)까지는 증기기관차가 힘이 딸려 김천증기기관차가 후미에서 밀어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추풍령역은 그 당시 기차들이 쉬어가는 곳이기도 했으며 쉬어간 것은 승객 승하차를 위해서가 아니고 그렇다고 고개가 높아서 쉬어간 것도 아니었다. 이곳에는 증기기관차 급수탑이 설치되어 있어서 물이 모자라는 기차는 이곳에서 물을 채우고 다시 가던 길을 갔던 곳이다.
트로트 가수 남상규(1938∼2022)가 부른 대중가요인 ‘추풍령’노래의 인기폭발과 함께 나훈아(1947∼),이미자(1941∼),배호(1942∼1971),현인(1919∼2002),김상희(1943∼),주현미(1961∼) 등 그 당시 유명가수들이 연이어 불렀던 관계로 만천하에 국민애창곡이 되었으며 그 유명세와 지역여론에 힘입어 1991년 다시 황금면을 추풍령면으로 개칭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2005년부터 영동군에서는 ‘추풍령’이란 콘탠츠를 최대한 활용해서 지역문화 창출과 신인가수들의 등용문으로 만들기 위해 추풍령가요축제를 매년 실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지역홍보를 확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김천지역에 그 이름도 유명한 高麗(고려)의 별 高麗星(고려성)과 新羅(신라)의 花郞(화랑) 羅花郞(라화랑)같은 형제음악가이자 걸출한 대중음악가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온고지신 정신으로 그 발자취와 업적을 새롭게 되새겨 봐야하며 지역의 자긍심 고취와 함께 지역대중문화를 보존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된다. 먼저 1921년 1월25일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에서 태어난 불세출의 남성 작곡가 나화랑(본명,조광환)은 일본 음악학교 유학을 다녀온 뒤 1942년에 가수로 먼저 데뷔했다가 곧 작곡으로 활동역역을 옮겼으며 이후 1983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40년 동안 많은 히트작을 발표하며 대중음악 작곡가로 뚜렷한 자취와 명성을 남겼다.
가수 이미자가 이름을 알리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열아홉 순정’ ‘님이라 부르리까’, 남인수(1918∼1962)의 ‘무너진 사랑탑’ ‘비의 탱고’ ‘울리는 경부선’, 도미(1934∼2010)의 ‘청포도 사랑’, 남일해(1938∼)의 ‘이정표’ ‘성황당 고갯길’, 김상희의 ‘울산 큰 애기’, 황금심(1921∼2001)의 ‘뽕따러가세’, ‘가야금 타령’등 작곡 작품이 수없이 많다. 그리고 나화랑은 음악가가족으로서도 유명하다. 백년설1914∼1980)의 ‘나그네 설움’,‘어머님 사랑’,진방남(1917∼2012)의 ‘마상일기’, 박재홍(1924∼1989)의 ‘재물포 아가씨’,자명고 사랑, 최갑석(1938∼2004)의 ‘고향에 찾아와도’ 등 명작 가사를 남긴 작사가겸 극작가 고려성(본명 조경환)은 나화랑의 맏형이다. 1960년대에 활약한 가수 유성희(1942∼2013) 역시 나화랑의 아내였으며 조규천, 조규만, 조규찬은 바로 나화랑의 음악 재능을 고스란희 물려받은 아들들이다.
또한 나화랑은 길옥윤(1927∼1995), 박춘석(1930∼2010)과 함께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3대 巨星(거성)으로 불리우는 음악대가로서 대중음악 1세대로 기록되고 있으며 이러한 불세출의 음악가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K트로트(Trot)와 한국대중음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2020년부터 시작된 트로트 열풍 신화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 트로트 팬들이 중장년층을 넘어 20,30대 까지 열광의 도가니로 유행하고 있으며 트로트 전성기를 이루고 있다.
한마디로 ’뽕짝‘’이라는 이름으로 어른들의 전유물로 불리던 트로트가 남녀노소 세대를 넘어 온세대융합양상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정덕현 (1969∼)대중문화 평론가는 “최근에 트로트 열풍에는 버라이어티(다영한)한 측면이 있다. 옛날의 감성을 오늘날의 스타일로 재해석한게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화랑 탄생 105주년이 되는 이때에 그 시대에 희노애락을 담은 노래를 다시 한번 되뇌이면서 가요문화 발전에 앞장선 거룩한 업적에 숙연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2024년부터 시작해온 나화랑 생가복원도 마무리 정리단계에 있음을 볼 때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나화랑과 고려성 형제음악가는 우리나라 대중가요문화의 융성과 벌전을 위해 크나큰 공헌이 있었으며 지금까지도 국민가요로서 풍미를 느끼게 하고 있고 우리들의 삶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지역민으로서 항상 자랑스럽고 감사할 뿐이다.
환경취재본부장 곽광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