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실 우리 집 화단에 가을 편지가 왔다 있는 듯 없는 듯 자그만 키에 옅은 분홍, 하얀 안개꽃이 오랜 가을장마 끝에 “저 여기 있어요, 선생님”하고 편지를 건넨다 백로인 아침에 마중 나온 가을 햇살과 제라늄 톱플 누드베키아 초화화 배추모종 친구들 눈에 잘 띄는 자기들은 뽐내며 많은 편지 보내오지만 읽혀지지 않는다 이순 넘은 남자 등 굽은 시간 속에 이제는 작고 여린 것에 눈길이 더 가는 건 무슨 조화일까 안개꽃은 여름내 하지 못한 이야기들 하나씩 가을 햇살에 늘어 말려 꽃말을 전한다 어릴 적 노실고개 코흘리개 친구들과 고무줄놀이하던 계집아이 친구들의 우표도 주소도 없는 먼 기억들을 한 점 바람에도 하늘하늘 부쳐온다 마당 가득한 가을 종일 편지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