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김을 모아 유리창에‘봄’이라 써 놓은 손글씨봄의 ㅁ은 깨끗이 소제한 우물이고봄의 ㅂ은 액을 막는 뚜껑이네요고무줄 뛰고 놀던 옛집 마당에우물 파던 날우물 바닥엔 오래 그을린 구들장을 놓아야 맑은 물 얻을 수 있다던 아버지먼저 “고수레” 하고 새참 먹듯동그랗게 둘러앉은 묵정밭에 한참 쪼그려 앉아 봄볕을 어루만져 보는데주소 없이 보내온 이 봄은 아무래도 아버지가 내 앞으로 보내신 게 맞는 것 같아요눈 감고 옛길 더듬으면 지금도 아버지의 그 보리밭 초록이 출렁거려요아껴 쓰려고 입속말로“봄”하고 되뇌어 보면 오래 덮어둔 우물 뚜껑 열리는 소리 들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