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말까지 개령현 일대의 청소년들을 교육하던 국립학교인 개령향교에서 고택음악회가 열려 지역 문화유산과 시민이 소통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지난 5일 오후 6시 개령면 동부리 개령향교에서는 김세운 전 시의회의장과 진기상 시의원을 비롯한 내빈과 개령면민, 향교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악과 민요, 대중가요, 색소폰 독주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회가 이어졌다. 이기양 김천문화원장은 “개령면의 소중한 역사문화자산인 개령향교를 선양하고 일반시민들과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음악회를 준비하게 됐다”며 향토문화유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당부했다.개령면 동부리 감문산 자락에 자리한 개령향교는 조선시대 개령현 관내 청소년들을 교육하는 국립학교로서 지금의 아포읍, 개령면, 감문면, 농소면, 남면을 관할로 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9호로 지정된 개령향교 대성전을 비롯한 외삼문과 내삼문, 동서재 등으로 구성됐으며 조선 시대 초에 서부리 사자사(獅子寺)를 임시향교로 사용하다가 1473년(성종4년) 개령현감 정난원이 유동산 앞 감천변에 새로 향교를 세웠다. 이후 수해로 유실됐다가 개령현감 이창거가 주축이 돼 향교재건 운동에 들어가 1610년(광해2년) 관학산 아래에 새로 창건했고 훗날 감천물이 범람해 다시 침수되자 1837년(헌종3년) 현감 이창재(李昌在)가 수해로부터 안전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개령향교는 영남만인소 사건의 중심향교로도 유명한데 영남만인소는 1881년 김홍집이 수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일본주재 청나라 참사관인 황준헌(黃遵憲)이 지은 ‘조선책략(朝鮮策略)’을 입수해 고종에게 바치고 개혁을 주창했다. 이에 안동의 유생 이만손을 중심으로 전국의 유생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김홍집을 탄핵하고 개화에 반대하는 만인의 연명 상소인 만인소를 올렸는데 이때 개령향교가 영남우도의 중심이 돼 만인소를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종편집: 2025-05-10 08:5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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