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삼 작곡가가 18일 오후 5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내 마음 그 깊은 곳에’,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그대가 꽃이라면’ 등의 명품 가곡을 만든 고 이안삼 작곡가는 1943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아버지의 고향인 김천으로 돌아왔다. 트럼펫을 잘 불렀던 그는 1961년 김천고를 졸업한 뒤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기악과에 입학했다.이때 작곡의 길로 이끈 평생의 스승 김동진 선생을 만난다. ‘가고파’ 등의 명곡을 쓴 선생이 어느 날 작곡과로 전과하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악기를 다루는 재능보다 오히려 곡을 쓰는 실력이 더 뛰어남을 알아본 것이다. 이 한마디에 트럼펫 대신 오선지를 들었다. 스승이 경희대 음대로 자리를 옮기자 그도 경희대 작곡과로 옮겼다.1964년 대학 4학년 때 군에 입대했다. 전역 후 1967년부터 2006년 정년퇴임 때까지 39년간 마산중과 김천중·고에서 음악 교사를 지냈다. 그 사이 1980년부터 1982년까지 2년간 미국에 건너가 브루클린음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줄리어드음악원 지휘과를 수료했다.2003년은 그에게 특히 뜻깊은 해다. ‘그리운 금강산’의 최영섭, ‘내 맘의 강물’의 이수인, ‘강 건너 봄이 오듯’의 임긍수와 함께 ‘4인 작곡가회’를 결성해 본격적으로 한국가곡 부흥에 나섰다. 정년퇴직을 전후한 시기부터 더욱 활발하게 대외 활동을 전개했다. 경북대 예술대 음대 강사, 한국작곡가회 부회장, 한국예술가곡 연합회 초대회장을 비롯해 포럼 ‘우리 시 우리 음악’(이안삼·문효치·박세원 공동대표)을 이끌었다.이 시기에 4개의 음반과 4인 예술가곡집을 내는 등 한국가곡에 활기를 불어 넣는 활동을 전개했다. 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가곡제, 서울가곡제, 국민가곡제 등도 잇따라 출범시켰다.고인의 인생 터닝 포인트는 63세로 정년퇴임을 한 이후다. 그냥 김천에 머물며 나오는 연금으로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인가 고민했다. 그는 결국 나홀로 서울로 올라갔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새로운 세계로 용감하게 첫발을 내딛었다. 광화문 근처 조그만 오피스텔에 거처를 마련한 뒤 ‘한국가곡 살리기’에 올인했다. 음악인생에 멋진 승부를 걸었다.고인의 최대 히트곡은 2000년 김명희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내 마음 그 깊은 곳에’이다. 이후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문효치 시)’, ‘그대가 꽃이라면(장장식 시)’, ‘그대 어디쯤 오고 있을까(김명희 시)’, ‘위로(고옥주 시)’ ‘물한리 만추(황여정 시)’ 등의 작품이 쏟아졌다.
고 이안삼 작곡가는 개인음반 12집을 발매했으며 12회의 개인작곡발표회를 열었다. 수상경력으로는 김천시문화상(1983), 금복문화예술상(1992), 경북문화상(1993), 경북예술상(2001), 한국가곡작곡상(2004), 국민훈장 황조근조훈장(2006), 대한민국가곡대상(2014) 등이 있다.유족으로는 부인 임성애씨와 아들 시섭·시문, 딸 시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