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 어느 날이었던가 보다. 햇볕의 막바지 극성에 등을 한껏 내맡기고 아내가 성당 교우한테서 얻었다며 꽃나무 하나를 정성껏 꽃밭에 심고 있었다. 이름을 물었더니 듣긴 들었는데 잊어버렸다고 한다. 그 뒤로도 간혹 생각이 나서 몇 번 다시 물어봐도 모른다는 대답만 들었다. 그 교우를 성당에서 자주 만나긴 하지만 물어보는 일 자체를 잊어버리기 때문이란다. 아내의 건망증에 나의 건망증까지 더해 그 꽃나무는 이름도 밝혀지지 않은 수상한 놈으로 우리 꽃밭에서 겨울을 났다. 왕성했던 생명력이 퇴각하는 늦여름에 삶의 터전에서 송두리째 뽑혀 와 낯선 땅으로 강제 이주한 불쌍한 놈이기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3∼4일이 지나자 예상했던 대로 줄기와 잎이 모두 말라 버려 죽은 줄로 알았다. 며칠 뒤 그 잔해를 치우다가 깜짝 놀랐다. 허물어져 말라 버린 잔해 속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대견하고 신기해서 기특하게 생각되더니만 이내 불쌍한 마음이 다시 들었다. 하늘 높이 자라나던 칸나의 새싹이 첫서리를 맞고 하룻밤 사이에 허물어져 내린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제 곧 가을이 오고 서리가 내릴 텐데 지금 새싹을 틔워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기구한 운명을 감내하며 살려고 애썼던 그 노력이 허사가 될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괜한 걱정을 미리 했던 것 같다. 그놈은 그 짧은 시간에 땅바닥에 착 달라붙어 잎들을 하나둘 늘려가더니 서리가 내릴 즈음에는 날 보란 듯이 제법 세력을 갖추게 되었다.
가을이 무르익어 무서리가 초목들을 후줄근히 적시는 밤이 며칠 지나가고 나니 꽃밭의 다른 꽃나무들은 시들어 말라 버렸다. 그러나 다른 꽃나무들과는 달리 그놈은 녹색 잎들을 단풍잎처럼 검붉게 변색시키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스스로 그렇게 단련시켰던 것인지 늦가을 된서리를 뽀얗게 뒤집어쓰고도 허물어지거나 시들어 마르지 않고 햇볕에 서리가 녹으면 다시 제 모습을 찾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겨울의 그 모진 폭설과 삭풍 속에서도 납작이 엎드려 겨울을 견디어 내는 참으로 끈질긴 놈이었다. 그놈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긴 겨울이 끝나고 생명력이 꿈틀대기 시작하는 초봄이었다. 모처럼 우리 집을 방문한 여동생이 꽃밭을 들여다보고 “어디서 ‘낮달맞이꽃’을 얻어 와 심었네.”라고 했다. ‘낮달맞이꽃’이라니 생뚱맞은 이름이었다. 낮도깨비에 홀린 듯 엉뚱한 이름이었다. ‘낮에 피는 달맞이꽃’이라는 의미이겠지만 ‘낮’과 ‘달맞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 아닌가?
우리 조상들은 자연물과 어떤 친교를 맺을 때도 그 대상에 따라 다가감을 달리 표현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말에는 ‘달맞이’,‘해바라기’라는 정감 어린 말들이 생겨났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본다. 달은 빛이 강렬하지가 않아 오래도록 쳐다볼 수 있고 또 맞이하여 노닐 수도 있어 ‘달맞이’이고, 해는 빛이 너무 강렬해서 아침에 잠깐 맞이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한낮에는 오래 바라보는 것이 불편해서 필요할 때만 바라보는 존재이기에 ‘해바라기’이다. 그래서 정월 대보름날 그해의 복을 비는 ‘달맞이’ 행사도 하고 추운 겨울날 따스한 햇볕이 필요하면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해바라기’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꽃의 이름도 그런 정서에 맞추어 밤에 피는 꽃을 ‘달맞이꽃’, 낮에 피는 꽃은 ‘해바라기꽃’으로 명명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밤에 피는 재래종 달맞이꽃은 나에게 어릴 적 아련한 추억을 불러오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한창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할 무렵인 고교 시절 나를 좋아한다는 여중생이 만나자는 손편지를 보내왔었다. 평소 별로 호감을 사고 있지 않은 여중생이었지만 한 번은 만나서 내 마음을 전달해야겠다는 생각과 그 호기심 때문에 약속장소인 뚝방길로 나갔었다. 환한 달빛과 냇가에서 피어오르는 여린 밤안개가 생각나니 보름 근처 어느 여름 달밤으로 생각된다.
여린 밤안개가 피어오르는 뚝방길 옆 잡초더미 속에서 달맞이꽃을 처음으로 가까이서 보기도 하고 또 만져도 보았던 것이었다. 밝은 달빛 아래에서 함초롬히 밤이슬을 머금고 피어 있던 모습, 달빛 아래 유난히도 눈에 띄던 그 하늘거리던 자태, 손끝에 전해오던 그 부드럽고도 부드러운 연노랑 꽃잎, 여린 밤안개 속에서 아득히 펼쳐지던 달빛 아래 풍경들, 나를 무지하게 좋아한다는 소녀의 진심 어린 고백, 나는 아편을 마신 듯 몽롱한 분위기에 취해 끝내 다시 만나지 말자는 모진 말을 하지 못하고 난생처음 입술을 빼앗기고 말았다.
재래종 달맞이꽃에 대한 좋은 이미지와 달밤에 대한 낭만적인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는 나로서는 황당한 이름을 가진 낮달맞이 꽃을 우리 꽃밭에 두기가 그리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옆에 심어 놓은 ‘매 발톱’이나 ‘꿩의 다리’, ‘하늘말나리’ 등과 같은 토종 우리 꽃나무들과 잘 어울릴 것 같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생소한 외래종이라는 그 낯설음이 나는 싫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기 전에 캐서 내버릴 작정이었지만 무슨 바쁜 일 때문에 잊어버리고 봄을 그냥 넘겨버렸다.
태양이 작열하기 시작하는 오월 하순 어느 날 오전 짧은 볼일을 마치고 점심 식사 때를 맞추어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잔디밭을 지나 현관 나무 데크 계단에 올라서려고 할 무렵 꽃밭 중앙에 환하게 피어 있는 노란 꽃 무리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게 아닌가?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낮달맞이꽃이 만개하고 있었다. 납작하게 땅으로만 기던 놈이 어느새 30∼40㎝ 갈색 줄기를 곧추세우고 줄기마다 4∼5개의 노란 꽃을 달고서 무리 지어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재래종 달맞이꽃보다 키도 작고 꽃도 작았지만 노란 꽃의 모습은 꼭 빼닮았다. 왜 낮달맞이꽃이라는 이름을 얻었는지 이해가 갔다.
뜨거운 태양에도 주눅 들지 않고 활짝 피어 있는 모습이 제법 호감이 갔다. 게다가 봄꽃은 지고 여름꽃이 아직 피지 않아 다소 썰렁했던 꽃밭을 환하게 밝혀 주어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하지 않는가? 그리고 우려와는 달리 여름이 코앞인데도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다소곳이 소담한 꽃송이들을 피워내고 있어 황당한 이름과는 달리 꽃으로의 어떤 품격도 느낄 수 있었다.
낯설음 때문에 푸대접 받았던 낮달맞이꽃이 환하게 핀 것을 보니 외가 친척뻘 되는 아저씨의 베트남 며느리가 생각난다. 아저씨의 외동아들은 나이가 오십이 되어 가도록 결혼을 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더니만 베트남 처녀와 늦은 결혼을 했다. 결혼식장에 모인 친척들이 이구동성으로 낯선 외국 며느리를 맞이하는 데에 관한 걱정을 했었다. 우리말도 모르는 베트남 여자가 아내와 며느리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지? 아저씨와 아들에 대한 걱정을 잔칫집 술안주로 삼았던 일이 기억 난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그 베트남 며느리는 상냥하면서도 우리나라 사람 못지않은 효성으로 시부모님들을 잘 모신다고 주위 칭찬이 자자하다. 그뿐만 아니라 남편이 구조조정으로 실직하자 베트남 음식점을 차려 지금은 집안 경제를 책임지고 있지 아니한가? 특히 아저씨는 귀한 손주를 낳아 대를 잇도록 해주었다고 며느리 자랑에 침이 마를 정도이다.
낯설음을 받아들이는데 우리는 좀 더 익숙해져야 한다. 낯설음은 이렇게 새로운 국면을 창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낯설음은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순수혈통의 단일민족국가라고 자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문가에 의하면 결코 우리나라는 순수혈통의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라고 한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외침과 전쟁으로 우리의 핏속에는 무수히 많은 씨족, 부족, 민족, 종족의 피가 섞여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외부수혈이 우리나라가 오늘날 이렇게 발전하게끔 만들어 온 원동력인 좋은 두뇌를 갖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 다문화 가정인구 수가 팔십만 명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들 대다수가 한국 사람들이 피하고 싫어하는 역할을 떠맡은 사람들이기에 우리로서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한국 처녀들이 결혼하기를 꺼리는 농촌 노총각과 국제결혼을 맺은 외국 처녀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피하는 험한 일자리를 떠맡은 외국인 노동자들, 그리고 그 자녀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다문화 가족들이다.
소통의 철학을 갈파한 장자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만약 우리에게 삶의 새로움이 허락된다면, 그것은 타자와의 마주침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망각의 수양론을 통해 타자와 마주칠 수 있는 최소한의 공백을 확보해야만 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낯선 타자들이다. 그 낯설음 때문에 심한 차별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다문화가정들이 많다고 한다. 특히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은 차별 때문에 정상적인 성장이 힘들다는 것을 학교현장에서 몸소 겪어 보지 않았던가? 정책적인 배려도 중요하겠지만 우리 모두 인식의 대 전환을 해야 할 것 같다. 피부색이 다르고 말이 다르다고 색안경을 끼고 차별할 타자가 아니라 보듬고 더불어 소통하여 새로움을 만들어나가는 신선하고 흥미로운 타자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낮달맞이꽃을 우리 집 꽃밭의 식구로 당당히 받아들여야겠다. 그리고 나의 마음속 텃밭에도 최소한의 공백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집 꽃밭과 내 마음의 새로움과 발전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