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319호 직지사 석조약사여래좌상 원래 직지사 입구 사적비 부근에 있었는데 1979년 약사전을 신축해 봉안했다. 1955년 국보 제475호로 지정됐다가 1963년 1월 21일 국보와 보물로 구분되면서 보물 제319호로 재지정돼 현재 성보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이 불상은 불신과 광배가 화강석의 한 돌로 조성되고 결가부좌와 향마촉지인에 약호를 든 약사여래불상이다.주형(배 모양)의 광배 안에는 당초문을, 외연부에는 화염문을 배치하고 목 부위와 드리워진 법의자락이 화려하다. 정좌한 무릎과 전체가 균형 잡힌 비율로 배분돼 아름답고 양감이 두드러지나 파손이 심해 표정을 읽을 수 없다.보물 제2026호 직지사 괘불도 직지사 괘불도는 1803년에 제작된 괘불로 현재 알려진 19세기 괘불 중 가장 빠른 시기에 해당하고 규모도 가장 크다. 2019년 6월 26일 보물 제2026호로 지정됐다. 머리에 보관을 착용한 보살형 본존이 양손으로 연꽃을 받쳐 들고 정면을 향해 당당하게 서 있는 독존 형식의 괘불도이다. 괘불 하단에 쓰인 화기를 통해 직지사를 중심으로 경북권역에서 활동한 제한(濟閑)을 비롯해 위전(偉傳), 탄잠(綻岑), 부첨(富添), 신화(信和) 등 총 13명의 화승들이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단독의 보살형의 본존을 중심으로 화면 상단에는 작게 10위의 시방제불과 5위의 보살상을 배치한 간단한 구성이며 앞 시기 괘불의 중량감 넘치는 형태에서 가늘고 늘씬한 형태미로 변모한 점, 섬세하고 유려한 선의 구사보다는 굵고 대담한 선묘가 돋보여 시대적 전환기에 제작된 불화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색감도 채도가 낮은 적색과 녹색의 대비로 18세기보다는 시각적으로 다소 엄숙한 느낌이다. 일부 권속에 국한돼 적용되던 음영법이 본존에까지 확대 적용되는 등 시대적 미감이 반영돼 있다.높이 12m 이상 되는 대형 불화임에도 불구하고 도상의 배치, 상하 축의 조형성, 색채감과 선묘 등 여러 면에서 19세기 불화를 대표할 만큼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작품으로 한국불교회화사에서 19세기의 첫 장을 여는 선구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42호 조창현 소장 전적 김천 조창현 소장 전적은 ‘효경(孝經)’, ‘동국이상국전집(東國李相國全集)’, ‘단계선생의서찬요(丹溪先生醫書纂要)’, ‘도은선생집(陶隱先生集)’, ‘운부군옥(韻府群玉)’ 등 5종 7책의 일괄 유물이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42호로 지정됐다.‘효경(孝經)’은 원나라 임신보(林莘甫)가 집주한 판본이고 1429년(세종 11)에 경자자(庚子字)로 인출한 금속활자본인데 유일본으로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 ‘동국이상국전집(東國李相國全集)’은 1251년에 이익배(李益培)가 고종의 명으로 개판한 중간본으로 간행 시기는 여말 선초로 추정된다. 전집 41권 중에서 권 14~17에 해당하는 1책이며 보존상태는 좋지 않지만 희귀성이 있다. ‘단계선생의서찬요(丹溪先生醫書纂要)’는 2권 2책의 목판본 가운데 권상(卷上)의 영본(零本) 1책으로 국내 현존자료가 희소하다. ‘도은선생집(陶隱先生集)’은 이숭인(李崇仁)의 시문집으로 5권 1책 가운데 시집인 권3 일부와 문집인 권4, 권5 일부가 수록돼 있다. 인본(印本)의 글씨가 선명해 초간본으로 판단된다. ‘운부군옥(韻府群玉)’은 원나라 매계서원판을 저본(底本)으로 판각한 번각본 권1, 권19~20과 이본 권2, 권15이다.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63호 도동서원 도동서원은 1771년에 건립된 연안이씨 문중의 현조 5명(이숭원 · 이숙기 · 이호민 · 이숙함 · 이후백)을 배양한 문중서원으로 남인과 노론의 당색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문중의식으로 극복한 흔치 않은 사례이다. 2018년 7월 16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63호로 지정됐다. 서원에 주향으로 모셔진 이숭원(李崇元)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이조판서, 형조판서, 병조판서에 이르렀으며 1471년(성종 2)에는 좌리공신으로 연원군에 봉해지고 중종 때 청백리에 녹선돼 역사적 족적이 뚜렷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와 관련된 문서(보물 제651호), 초상화(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9호)는 서원이 가지는 학술적 가치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1918년 명륜당 중수를 주도한 이경균은 1919년 파리장서사건의 김천 유림대표로 서명한 독립운동가로서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장소이기도 하다.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70호 계림사 석조불보살좌상 계림사 석가삼존불좌상은 18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계림사 대웅전에 봉안 중이다. 2019년 3월 2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70호로 지정됐다. 대웅전 불단에는 석가여래좌상을 주존으로 좌측에 양사불좌상, 우측에 보살좌상이 있다. 3구의 불상은 모두 돌로 제작됐으며 양식상의 특징으로 보아 18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국가등록문화재 제778호 김천고 본관국가등록문화재 제779호 김천고 옛 과학관 김천고등학교 본관 건물과 옛 과학관 건물이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이들 두 건물은 2020년 3월 4일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등록문화재로 고시된 후 3월 9일부터 30일간의 예고기간을 거친 후 본관 제778호, 옛 과학관은 제779호로 각각 지정됐다.1932년 8월 31일 준공된 본관은 한국 근대건축 설계의 선구자로 평가 받고 있는 박길룡(1898~1943)의 작품으로 1950년 6·25전쟁 때 일부 손상이 입기는 했으나 1957년 복원공사를 거치면서 원형을 유지한 귀중한 근대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박길룡은 서울의 화신백화점과 혜화전문학교 본관을 설계하는 등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건축설계사로 명성을 얻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건축전문 잡지인 ‘건축조선’을 창간하기도 했다. 옛 과학관은 1940년 3월 1일 준공된 후 6·25전쟁 때 일부 손상을 입었고 1959년 복구공사가 이뤄진 후 과학관 건물로서의 특징적인 내·외부 시설을 갖춘 채 현재까지 원형을 잘 보존한 것이 높게 평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기존의 최송설당 동상을 비롯해 3건의 국가등록문화재를 보유하게 된 김천중·고는 1931년 육영사업가 최송설당 여사가 사재를 출연해 1931년 김천고등보통학교로 개교한 이래 민족지도자를 비롯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명문사학으로 발전했고 1938년 김천중학교로 개칭하고 1951년 김천고등학교 설립, 1957년 김천중·고로 병합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김천의 문화유산(1~10회) 자료를 제공해준 김천문화원 송기동 사무국장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최종편집: 2025-05-09 20:4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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