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하게 누워 있는 바위에 끊임없이 제 몸을 부딪치는 파도를 본다. 파도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큰 입을 열고 거세게 달려오지만 바위는 먼 하늘만 바라본다. 파도에게 있어 바위는 운명의 덩어리, 어쩔 수 없이 부딪혀야 하는 그의 현실일 것이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참으로 지겨웠다. 그 후 명화극장을 통해 본 멜빌의 ‘백경’이 더 강하게 남아있어 결국은 이 두 작품을 섞어서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는 내가 바다를 몰라서였을 것이다. 큰애를 낳고 친정에서 조리하던 중 아버지의 서재에서 이 책을 다시 찾아 읽으면서 비로소 바닷가에 서서 파도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부산에서의 첫 직장을 그만두고 친구의 제의에 따라 고향으로 돌아온 남편은 결국 생각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무릎을 꿇었다. 막일을 하고 돌아와 나의 배를 쓰다듬던 그의 손에는 파도와 싸운 소금기가 뚝뚝 떨어졌다. 거대한 청새치는 친구의 제의였을 것, 그러나 지난 수개월 동안의 현실은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 상어 떼였다. 다행이 고등학교 은사님께서 직장을 소개해 주셔서 아이의 백일잔치는 그의 첫 월급으로 치를 수 있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에 실수한다. 그렇기에 파멸을 면치 못하지만 패배하진 않는다. 희망이 있기에 내일이 아름답다. 그래서 사람은 내일을 살아간다.”라는 작품 속 유명한 말처럼 그는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묵묵히 견디며 30년 근속을 눈앞에 두고 있다. ‘노인과 바다’를 두 번이나 읽어 본 나보다 그는 바다를 잘 읽고 있는 것 같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잡은 물고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꿈쩍 않는 바위 때문에 그는 거센 파도와 수없이 싸웠을 것이다. 청새치가 걸려들자 산티아고 노인은 작살을 던질 수 있는 거리까지 끝까지 버틴다. 그동안 남편도 피가 흐르는 손으로 낚싯줄을 당기면서 버텨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남편은 청새치를 잡기 위해 파도와 싸우기보다 뼈만 남은 물고기를 배에 매단 채 당당하게 돌아오는 그 모습을 배우려고 하는 것 같다. 비록 상어 떼에게 청새치의 모든 살점을 다 빼앗겨버렸지만 오로지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기만을 바라며 조류와 풍향에 집중하는 그 모습! 나는 그 노인의 삶을 지지하던 소년 마놀린이 되어, 사바나 초원에서 사자와 뛰노는 꿈을 꾸는 그의 곁을 지키겠지. 사는 것이 거센 파도라고 느껴질 때마다 이 책을 읽으며 바다를 생각한다. 바다는 파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빛과 하늘과 구름이 있다. 파도가 힘들면 누워 하늘을 보고 물고기가 잡히지 않아 괴로우면 빛에 내 마음을 말리면 된다. 구름은 가끔 시원한 그늘을 주기도 할 것이다. 파도는 결국 바위 앞에서 제 몸을 산산이 부수며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아버지의 서재에 꽂혀 있던 낡은 책 한 권! 아버지의 바다도 얼마나 끔찍했을까! ‘클레멘타인’을 부르실 때마다 촉촉하게 젖어가던 아버지의 눈동자가 먼 나라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밤이다.
최종편집: 2025-07-22 16:2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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