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41호 율수재
율수재는 봉산면 인의리 마을 뒤편 극락산 자락에 있다. 1686년(숙종 12년) 건립된 이래 여러 차례의 중수가 있었고 현재의 건물은 1800년대 말 중건됐으며 2008년 9월 18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41호로 지정됐다.성종 때 성리학의 대가요 명문장가인 문장공 매계 조위(曺偉, 1454~1503)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유허지에 건립됐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일(一)자형 건물로 중앙 2칸에 4칸 대청을 놓고 그 좌측에는 각 1칸씩의 마루와 온돌방을 앞뒤로 배열하고 우측에는 2칸통의 온돌방을 뒀다.처마 밑의 현판 글씨(梅溪舊居)는 우암 송시열의 친필이며 1980년부터 매년 김천문화원이 주관하는 매계백일장이 열리고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21호 계림사 석조나한좌상
개령면 동부리 감문산 계림사 입구에 있는 이 불상은 상하좌우 170cm, 두께 30cm 가량의 바위 표면에 3cm 정도의 깊이로 얇게 부조된 마애상이다. 계림사 인근 산기슭에서 현재의 장소로 이안됐으며 2014년 10월 20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21호로 지정됐다. 두 손을 맞잡은 채 결가부좌했고 머리에는 두건을 착용하고 있다.두드러진 특징은 머리의 두건과 수인(手印)으로, 이처럼 두 손을 깍지 낀 채 엄지를 맞댄 수인은 본 상을 제외하고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마멸이 심해 존명과 제작시기 등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하기 어려우나 비슷한 도상의 상들이 대부분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제작된 사례가 보고돼 있으므로 이와 비슷한 시기로 추정된다. 두건을 쓴 독특한 도상의 불상은 현존 예가 매우 적어 희귀성이 있으며 2m에 가까운 크기로 단독 전각의 주존불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41호 칠불사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
부항면 사등리 칠불사에 소장돼있는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는 산자가 자신이 죽은 후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밝히고 보살행을 실천할 것을 서원하는 의식에 관한 책으로 통도사개판으로 간행한 목판본이다. 2016년 4월 28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41호로 지정됐다. 이 책의 의식과 사상은 순수한 불교와는 차이가 있으며 중국 도교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이 나열돼 있다. 불교가 새로운 이역의 문물에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그 지방과의 융화 연구에 도움이 되는 귀중한 자료로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서적으로서 전래본이 많지 않다.등록문화재 지정예고 황산댁
황산댁은 조선시대 김천지역을 대표하는 반촌으로 창녕조씨집성촌인 봉산면 인의리 속칭 봉계 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고택으로 2019년 12월 30일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문화재로 지정 예고됐다.택호인 황산(黃山)은 조한규(曺翰奎. 1804~1864)의 부인 친정이 거창신씨 집성촌인 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마을인 데서 연유가 됐다.사랑채 대들보에 ‘上元五十八年辛酉八月拾參日未時立柱上樑’이라고 기록된 것으로 미뤄 1801년(순조 1년) 증(贈)이조참의 조언명(曺彦明)이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가옥은 문간채와 사랑채, 안채, 곳간채로 이뤄졌으며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짓는 내외문이 별도로 나 있으며 안채에서 텃밭으로 연결되는 쪽문이 남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600석의 쌀을 저장했다는 곳간채는 김천지역 고택에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으로서 대대로 천석꾼으로 불린 이 이 집안의 재력을 상징이기도 하다. 황산댁은 우리나라 대중가요를 크게 부흥시킨 작사가 조경환(예명 고려성)과 작곡가 조광환(예명 나화랑) 형제가 나고 자란 생가로 더욱 유명해졌다. 고려성은 ‘나그네 설움’, ‘삼각산 손님’, ‘선창의 블루스’, ‘제물포 아가씨’ 등을 작사했으며 나화랑은 ‘열아홉 순정’, ‘무너진 사랑탑’, ‘청포도 사랑’, ‘뽕따러 가세’, ‘울산 큰애기’ 등 주옥같은 명곡을 작곡했다.보물 제1992호 이숙기 좌리공신교서
2018년 6월 27일 이숙기 좌리공신교서가 도유형문화제에서 보물로 승격됐다. 이 공신교서는 연안이씨 이숙기(李淑琦, 1429~1489)가 1471년(성종 2년)에 좌리공신 4등에 녹훈되면서 받은 것으로 여기에는 1~4등까지 73명의 공신들에게 내려졌던 노비와 전답의 내용이 기재돼 있다. 이숙기는 1453년(단종 1년)에 무과에 급제하고 세조 때 원종공신 2등에 책록됐다. 이시애의 난에 공을 세워 적개공신 1등에 책록되고 그 공으로 이조참판을 제수받고 연안군에 봉해졌다. 1471년에는 좌리공신 4등에 책록됐으며 형조판서와 호조판서를 역임했다. 등록문화재 제635호 김룡사사료수집
‘김룡사사료수집’은 불교학자였던 퇴경 권상로(權相老)가 1933년 당시 본사였던 김룡사와 각 말사에서 확인되는 사찰관련 기록들을 괘사지와 원고지에 직접 필기해 만든 기록이다. 2014년 10월 29일 등록문화재 제635호로 지정됐다. 김룡사의 연혁과 김룡사에서 행해졌던 상량, 단청, 중수 등과 같은 건축 관련기록과 탱화조성, 불상의 개금, 괘불의 발문 등 각종 불사의 기록까지 매우 상세하고 정연하게 잘 기록돼 있어 근대 불교의 기록문화재로서 가치는 매우 높다고 평가된다. 현재 ‘한국불교사료’, ‘한국사찰전서’ 등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사찰관련 자료들이 ‘김룡사사료수집’에 다수 수록돼 있고, 권상로의 육필원고초고본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등록문화재 제636호 대본산 김룡사 본말사 연혁 원고이 기록물은 김룡사 뿐만 아니라 문경 및 상주 등 경북 일대의 사찰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상세하게 담고 있는 것으로 1933년 제작됐다. 김룡사연혁을 시작으로 김룡사사적서와 대성암, 화장암, 양진암, 금선대, 도솔암 등 김룡사와 산내암자의 각종 불사관련 기록과 불상, 불화 등 조성봉안기와 개금, 수리기록, 찬문 등의 다양한 내용이 수록돼 있다. 2014년 10월 29일 등록문화재 제636호로 지정됐다.권상로가 필사본으로 엮은 이 원고는 김룡사의 사적기 뿐만 아니라 중수기, 단청기, 상량문과 각종 불사관련 기록, 불상, 탱화 등의 제작 및 개금, 수리 등 다양하고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당시 경북지역 사찰의 불사활동에 참여했던 인명(人名)과 각종 불상과 불화, 건축물 등의 조성배경과 과정 등을 정확히 알아볼 수 있는 근대 불교사와 미술사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기록자료로 평가할 수 있다.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92호 대휴사 목조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이 보살상은 원래 김천 봉곡사의 영산전에 봉안된 삼세불의 한 존상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대휴사로 이안돼 모셔져 있다.보관이 새로 조성된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양호한 상태이며 불상양식과 단확기, 후령통 등 관계기록을 통해 볼 때 색난(色難)의 제자인 하천(夏天)에 의해 1730년에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된다.조각승 및 제작연대를 알 수 있어 복장유물(전적 28책, 고문서 4매, 유물 1점)과 함께 불교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작품이다. 2016년 4월 28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92호로 지정됐다.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52호 구화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교동 구화사에 소장된 이 불상은 전체가 하나의 돌로 이뤄진 비로자나불좌상으로 2017년 1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자료 제652호로 지정됐다.전체 크기에 비해 머리가 매우 크게 조각돼 있다. 육계가 크게 표현됐으며 원기둥 형태의 계주가 정상에 있다. 수인은 왼손이 오른손을 감싼 지권인인데 손가락이 위가 아닌 앞을 향하고 있다. 또한 오른발 엄지발가락 일부가 노출되도록 표현된 점은 조선 후기 불상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이 불상의 양식적 특징들은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금문(金文)의 작풍과 유사하다고 판단된다. 복장유물이 모두 도난을 당해 원래의 봉안처나 제작연도 등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법령-혜희·조능-금문 등으로 이어진 조각승 유파의 특징이 발현된 조선 후기의 작품으로서 자료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