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날 우리의 선진들은 사람을 신언서판으로 판단하여관리를 뽑는 기준으로 삼았다. 즉 이것의 유래는 중국 당대에 관리 선정의 네 가지 기준으로 삼았다. 첫째 인물이 준수해야 하고 둘째 말을 바르고 조리 있게 해야 하며 셋째 문장력이 좋고 넷째 판단이 올바른 사람을 지칭하는 말에서 차츰 우리나라에 관리 등용의 조건이 되어 왔다. 다 좋은 조건이고 바른 기준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요즘 곳곳에서 말에 대한 부정직과 거짓으로 인해 많은 것을 걱정하고 있다. 거짓과 위선 거기다 말이 너무 가볍게 여반장하는 풍조도 염려 된다. 더 우려되는 것은 거짓과 우리말 파괴가 너무 많이 행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가 험악해지면 말씨도 마찬가지로 험악해진다. 말이 순화되지 못했다는 것은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증거다. 흔히 나라가 망하려면 언어가 먼저 망한다고 하는데 말이란 사회를 그대로 투영시키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말이 많고 또 말 잘 바꾸기로는 정치판보다 더할까. 정치판은 그만큼 혼탁하다는 증거다. 지난 정권의 모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에 너무 솔직한 말로 해서 말이 많았던 분임을 기억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모 관리가 위증과 거짓으로 해서 말이 설왕설래하여 국민들은 많은 우려를 금치 못한다. 존경 받던 사람이 국민을 반으로 갈라놓고 정치가 온통 혼돈에 빠지고 판단이 옳고 그름을 떠나 진영논리에만 매몰된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치꾼들은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것을 오히려 상식으로 치부한다. 하기야 어디 정치뿐인가 세상이 깨이면서 온갖 곳에서 말의 홍수가 났는지 말은 확실히 옛날보다는 도도히 흐르는 흙탕물 같다. ‘일언 중천금’이라고 한 마디 말을 천금처럼 여겼던 옛 선비들의 말 한마디와 요즘 소위 정치 지도층이라 하는 이들의 말의 무게는 비교가 불가하다. 옛날부터 배울수록 말에 무게가 있고 행동이 믿음직하며 정직하고 양심적이고 사회에 헌신적이라 여기는 것이 상식이다. 요즘 와서는 어찌된 셈인지 많이 배웠다는 사람일수록 정 반대의 길을 가고 있으니 곡학아세도 유만부동이지 오히려 배우지 않음만 못하다는 자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온갖 말의 잡동사니들과 거짓말이 예사로 통용되고 거기다 상업주의에 편승하여 돈과 권력이 사회에 횡행, 유행한다는 것은 곧 사회가 그만큼 순화되지 못했다는 증거다. 가뜩이나 외래어에 찌든 우리말이 이제는 안에서도 혼탁한 사회의 영향으로 말이 비어의 홍수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어른들은 들어도 알 수 없는 말이 어린 아이들 사이에 풍미하고 있다. 사회가 부패해 간다는 사실을 명심해 두어야 할 일이다. 사회가 정화될 때 말도 순화되고 말을 순화해야 사회가 올바로 선다. 말이란 그 나라의 얼이라 할진대 진실로 말의 순화 없이 좋은 문화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요 민족의 앞날도 결코 밝지 않다는 사실을 위정자부터 바로 알고 있어야 한다. 더구나 위정자와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권모술수만 노리는 현실에서 그들이 정제되지 않고 쏟아내는 혼탁한 말이 바로 현재와 미래의 세대뿐 아니라 고유의 문화마저 실종 시키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