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호랑이의 해가 밝았다. 예년 같으면 호랑이의 용맹함을 빌려 희망과 힘찬 도약으로 새해를 맞는 덕담으로 이야기꽂을 피울 법도 하지만 작년에 이어 좀체 기세가 꺾이지 않는 코로나19의 거듭된 악재로 새해를 맞는 기분이 예년 같지 않은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왕에 밝아온 호랑이의 해를 그냥 넘길 수는 없다. 우리는 과거 수천 번의 외세침범과 갖은 역병에도 불구하고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 반만년의 찬란한 역사를 이뤄오지 않았던가? 코로나19와도 금년 호랑이의 해에 한판 싸워 이겨보자. 민속적으로 열두 띠를 상징하는 십이지(十二支) 가운데서도 세 번째인 호랑이는 예부터 용맹함과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신령스러움으로 두려움의 대상인 동시에 여러 지명과 전설과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친근한 동물이기도 했다. 옛날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에는 호랑이가 야생동물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인간과 공존하거나 대적하면서 수천 년을 함께 살아왔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호랑이와 인간에 관련된 이야기는 지명과 풍수지리, 전설, 민화 속 그림으로나마 아직도 우리 주변에 남아있다.호랑이의 해를 맞아 우리 고장 김천에 전해지는 호랑이 관련 이야기를 들추어보는 것도 코로나로 우울해진 심신을 달래보는 재미가 쏠쏠하지 않을까 싶다.<편집자 주>먼저 마을이름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풍수지리와 관련된 이야기부터 살펴보자.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호랑이는 예부터 한반도 일대에 광범위하게 서식하며 인간과 공존해왔는데 필연적으로 인간과는 대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따라서 호랑이는 인간에 있어 공포의 대상인 동시에 경외(敬畏)의 대상, 나아가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또 사악한 기운을 막는 벽사(闢邪)의 대상물로도 인식돼 호랑이와 관련된 풍수지리와 마을이름으로 등장하게 된다.감문산과 호두봉 개령면 동부리 뒷산인 감문산의 봉우리 중 호두봉으로 인해 아포읍 대신리 한골(大谷)마을이 호랑이를 잡는 함정(陷穽)을 뜻하는 함골(陷谷)으로 바뀐 사연이 흥미롭다.감문산은 풍수지리로 볼 때 호랑이가 엎드려있는 와호형(臥虎形)으로서 엎드린 호랑이의 머리가 개령면사무소 뒷산인 호두봉(虎頭峰)이라고 한다. 감문산에는 계림사(鷄林寺)가 있는데 이 절은 직지사를 창건한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서기 418년에 창건한 것으로 계림사가 위치한 감문산이 풍수지리설로 볼 때 호랑이의 기운이 너무 세어 맞은편 아포 대신마을에 살상(殺傷)의 기운이 뻗치는지라 그 기운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짓고 호랑이와 상극인 닭을 천마리나 길렀다는 것이다.그런데 그 닭조차 수시로 폐사하는지라 궁여지책으로 절 이름을 닭이 숲을 이뤄 산다는 뜻의 계림사(鷄林寺)로 고치고 닭 기르는 것을 대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훗날 호랑이 기운이 발호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한골마을의 이름을 함정을 뜻하는 빠질 함(陷)자로 고쳐 함골로 부르게 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마을 입구에는 큰 돌에 이정표에 함골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함골마을 이정표 대덕면 관기3리 호미마을은 마을뒷산이 풍수지리로 볼 때 호랑이가 길게 누워있는 와호형(臥虎形)이라해 속칭 호산(虎山)이라 물렀는데 마을이 호랑이 꼬리부분에 위치해 있다해 호랑이 호(虎)자에 꼬리 미(尾)자를 써서 호미(虎尾)라 이름했다.이 마을에는 예로부터 호미금계(虎尾禁鷄) 즉, “호미마을에는 닭을 금한다”는 이야기가 불문율(不文律)처럼 전해오는데 산 아랫마을에서 호랑이와 상극인 닭 울음소리가 나면 새벽이 온 줄 알고 호랑이가 도망을 가게 돼 마을의 운세가 쇠퇴한다고 닭을 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예전에 마을주민 중 몰래 닭을 기르다 발각이 돼 주민들로부터 멍석말이를 당하고 쫒겨난 사람이 있을 정도로 호미마을에서 닭을 키우지 않는다는 것은 마을의 오랜 전통이 됐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져 수년전 “세상에 이른 일이”라는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호미마을 구성면 용호리로 속한 마을 중 복호마을은 마을 뒷산인 개골산의 형세가 호랑이가 누운 형상인지라 엎드릴 복(伏)자를 써서 복호(伏虎)라 하고 윗마을은 상복호, 아랫마을은 하복호라 했다.복호동 이정표 감천면 용호리로 속한 복호마을도 고당산으로부터 뻗어 내린 마을 앞산의 산세가 엎드린 호랑이와 닮았다 해서 복호(伏虎)라 이름했다고 한다.위와 같이 호랑이는 민속적으로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를 경배의 대상으로 여겨 마을이름으로 삼아 호랑이의 강한 기운으로 사악한 기운을 막아 마을의 안녕과 후손의 발복을 기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호랑이는 인간과 대척점에 있으면서도 인간을 도와주는 수호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특히 하늘을 감동시켜 호랑이가 인간을 보호하는 효행을 장려하는 전설의 대상물로도 자주 등장한다.그 대표적인 마을이 성주이씨 집성촌인 조마면 신곡리 백화동의 효자 이세간(李世幹)과 호랑이에 얽힌 전설이다. 이 마을에는 이세간을 비롯한 성주이씨 조상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 상친사(尙親祠)가 있는데 1702년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묘소 옆에 움막을 짓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하는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절을 하니 무릎 닿는 곳에 잔디가 살지 못하고 땅이 깊이 파였다고 한다. 밤마다 호랑이가 나타나 묘소 주위를 돌았는데 공격하기는커녕 여막 아래에 앉았다 가기를 반복하니 사람들은 하늘이 효자를 지켜주기 위해 호랑이를 보냈다며 마을이름을 효자동(孝子洞)이라고 불렀다.1729년 성주군 금수면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함정에 빠졌는데 워낙 포악하게 저항해 아무도 근접을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세간이 달려가 보니 바로 시묘살이할 때 주위를 맴돌던 호랑이인지라 데려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성주댐이 들어서면서 수몰이 된 금수면 들판이름이 이 같은 연유로 근년까지 ‘범들’이라 불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1733년 이세간이 사망하자 울면서 굶어 죽었고 이를 기특하게 여긴 후손들이 호랑이 그림을 상친사 벽에 벽화로 그리고 뒤뜰에는 의호신령비(義虎神靈碑)를 세워 호랑이와 이세간을 추모했다고 한다.상친사 의호신령비 대덕면 덕산마을 입구 조산걸에는 ‘장릉참봉김녕김공휘경직효행비’가 있는데 김경직(金慶直)은 조선시대 말 효자로 아버지 김석용과 함께 대덕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호랑이를 만나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 가는 것을 추격해 부친의 시신을 찾아왔다고 한다. 장례를 마친 후 원수를 갚기 위해 백일기도를 드리고 대덕산 곳곳에 함정을 파 호랑이를 잡았는데 세 번째 잡은 호랑이가 아버지를 해친 호랑이였다고 한다. 이 같은 효행을 전해들은 조정에서 장릉참봉 벼슬을 내려 효행을 칭송했다고 한다. 김경직 효행비 해풍김씨 집성촌인 봉산면 신암리 고도암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김시창(金始昌)을 기리는 정려각이 있는데 조선시대 중엽 우암 송시열(宋時烈)로부터도 존경을 받던 참선비로 명성을 얻었다.1515년 모친이 별세하자 3년간 시묘살이를 했는데 이때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자 문중어른들이 모두 호환(虎患)이 두려워 시묘살이를 중단할 것을 호소했으나 오히려 태연했고 겨울에는 오히려 호랑이가 김시창의 몸을 감싸주고 태워 주기까지 하니 주위에서 호랑이까지 감동시킨 큰 효자가 나왔다고 칭송이 자자했다고 한다.김시창정려각 혁신도시 건설로 지금은 사라지고 도로공사 본사가 들어선 옛 남면 용전리 우래마을에는 조선시대 말 세워진 박상남(朴尙南)의 처 팔거도씨 부인의 정려각이 있었다. 도씨부인은 혼인 첫날밤에 남편이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것을 보고 죽을힘을 다해 호랑이와 싸워 남편을 구해 나라로부터 정려를 받고 남편 박상남은 현령벼슬을 제수받았다.팔거도씨정려각 터 개령면 덕촌리 산당(山堂), 감문면 보광, 증산면 황점리 초막골, 구성면 호초당산(虎草堂山) 등에도 호랑이를 산신(山神) 또는 산군(山君)으로 섬기는 산신제를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직지사 운수암과 은선암, 호랑이절로 불리는 정심사를 비롯한 지역 내 많은 사찰에도 예부터 산신각에 호랑이를 산신령으로 모시고 호랑이와 인간이 공존하는 삶을 살아온 것을 볼 수 있다.2022년 호랑이의 해를 맞아 모쪼록 강한 호랑이의 포효(咆哮)소리에 코로나19가 멀리멀리 달아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송기동(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최종편집: 2025-07-26 07: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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