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늙지 않느냐?>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나는 젊었거니 돌이라 무거울까./늙기도 설워라커늘 짐을 조차 지실까”(정철)오래 전 이야기다.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대표가 작심한 듯 늙은이를 폄하(貶下)하는 망발을 터뜨려 늙기도 서러운 늙은이를 다시 한 번 서럽게 했다. 자기는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고 젊음을 누릴 것으로 착각하는 어리석음이 이런 망언을 토하게 만들었다. 그는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 그 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보면 그 분들은 이제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기 때문에 그 분들이 미래를 결정해 놓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의 발언이 일파만파를 일으키자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으나 진심이라기보다는 선거를 의식한 제스처에 불과했다.
투표를 하지 않아도 좋을 60~70대 ‘폐기처분된 쓸모없는(?) 존재’들이 분노했다. 노인뿐만 아니라 어른을 존경하는 젊은이와 늙은 부모를 공경하는 청장년들이 몸을 부르르 떨며 분을 참지 못했다. 노인세대는 지난 세기동안 빈곤으로부터 국민소득 1만 불 시대를 이루어낸 역군이며 6․25 북한침략전쟁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온 주역이다. 피와 땀으로 이 나라를 일군 노인세대의 기본권마저 박탈하겠다는 망언은 천인공노할 발상이다.󰡒너는 늙지 않느냐󰡓 성난 목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늙은이를 홀대하는 패륜적 정치인은 정치 이전에 인간수업부터 해야 한다. <신고려장의 슬픈 노래>옛날에는 고려장이란 게 있었다. 고구려 때 노쇠한 사람을 광(壙;墓室) 속에 옮겨 두었다가 죽으면 거기 안치하고 금은 보화를 넣은 다음 돌로 쌓아 봉토하였다고 한다. 노인을 버리던 좋지 못한 습속이었다. ‘기로전설(棄老傳說)’은 이런 얘기를 담고 있다. 풍습대로 70세 된 노인을 아들이 지게에 지고 산중에 버리고 돌아올 때, 그를 따라왔던 그의 어린 아들이 그 지게를 다시 가져 오자 아들에게 󰡒왜 지게를 가지고 오느냐?󰡓물었다. 어린 아들이 “아버지도 늙으면 이 지게에 지고 와서 버려야 하기 때문에 가져온다”고 대답했다. 그 말에 그는 뉘우치고 늙은 아버지를 다시 집에 모시고 와서 잘 봉양했고 그 후로 고려장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다.
당시 인간에 대한 척도가 육체적인 힘에 의하여 구분되는 수준이었음을 보여준다. 정치인의 망언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늙은이를 젊은이와 육체적으로 단순비교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옛날에도 고려장이 어른 공경의 효정신을 훼손한다 하여 폐지한 것을 21세기 자유민주주의 나라 한국에서 신고려장을 들고 나온 것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고려장으로 돌려놓는 반인륜적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오만방자한 가벼운 입>
정치인의 노인 비하 발언은 경로효친사상을 깔아뭉갠 교언(巧言)이다. 노인들의 투표가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평소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표출했을 개연성이 높다. ‘버르장머리 없고 소견머리 없는’ 개인의 한계일 뿐 아니라 갑자기 인기가 치솟자 마치 개선장군이나 된 것처럼 우쭐하여 국민을 우습게 알고 오만방자함에 도취하여 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 했는데, 그들은 입은 삐뚜러지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을 했다 하면 삐뚜러지게 하니 가벼운 입의 혈통을 타고났는가 의구심이 생긴다.
품성은 언행에서 드러난다. 언행을 통해 그 사람의 정체성이 확인된다. 본인은 앞뒤 맞지 않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지만 본심은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가벼운 입은 칼이 되어 남을 죽이고 자기를 죽인다. “모든 화는 입에서 나온다. 입은 이부(利斧=날카로운 도끼)와 같아서 그 몸을 자괴(自壞=스스로 파괴)하나니, 악언(惡言)을 유(由)하는고로 포악(暴惡)을 일으키어 일체악(一切惡)을 증장(增長)하느니라” 불경(佛經)에 있는 말이다.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말에는 책임이 따른다. 자신의 발언이 “어르신들께서 나라의 건설과 민주화에 기여했듯이 젊은이들도 나라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취지였다”며 말도 안 되는 해명을 하는 것으로 뉘우침이 될 수 없다. 솔직하지 못했다. 말을 바꾸고 호도하는 수법이 치졸했다.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온 우발적인 발언이라고 변명하는 대목에서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 발언에 대해 기자의 질문에 답변한 것일 뿐이라고 한 것과 형식과 내용이 꼭 빼닮았다. 어쩌면 그렇게 닮은꼴인지 놀라울 따름이다.
자신의 망발에 대해 진정 참회하는 정치인이라면 응분의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 말에 책임을 지고 장본인이 집에서 쉴 일이다. 그것이 위기를 일시 모면하려는 가면의 술책이 아니라는 것, 즉 사죄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길이며 개혁을 부르짖는 책임 있는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지역갈등으로 인해 국론이 분열되고 지역 간 증오의 골이 깊었다. 그 피해는 경제적 산술로 계산할 수 없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런데 의석 몇 석이 문제가 아니라 지역갈등 해소가 최대 목표라면서 떠벌리는 정치인이 세대갈등을 부추기는 위험한 장난을 했으니 세상이 무섭다. 세대갈등은 지역갈등을 비웃을 만큼 파괴력이 엄청날 것이라는 것은 식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면 예상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