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네 명의 쌍둥이를 낳은 가족이 KBS인간극장 프로에 방영된 적이 있다. 국민들은 그 부모를 영웅으로 호칭하면서 일주일동안 많은 격려와 뜨거운 박수를 보낸 일이 있다. 요즈음 젊은 부부들은 하나도 잘 안 낳으려 하는데 네 명이나 낳았으니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위대한 일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이순신 장군을 영웅, 성웅으로 일컫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임진왜란 때 풍전등화(風前燈火)에 놓인 우리나라를 건져내고 배 위에서 장렬하게 전사해서가 아니라 그가 남긴 ‘난중일기(亂中日記)’의 내용을 보면 구구절절 나라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할 뿐 아니라 매사 일거수일투족이 애국으로 일관되고 있음을 본다. 마치 영국의 넬슨 수상과 함께 많은 이들의 영웅 칭송으로 그 이름이 세세토록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꼭 이런 훌륭한 영웅들 말고도 우리들 주변에 소시민들 중에 가끔씩 영웅 칭송을 받을 만큼 장한 일을 하는 이들이 있다. 이른 아침 출근길 시내버스에서 소매치기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자신의 행위가 발각되자 흉기로 운전사와 승객들을 위협하면서 버스에서 내리려 했다. 버스 안은 갑자기 두려움과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 때 용감한 한 청년과 시민이 합세하여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소매치기가 휘두르는 칼을 제압하고 소매치기를 잡았다. 모든 승객들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한 몸에 받으면서 일순간에 영웅이 되었다. 옛말에 “호걸(豪傑)은 되기 쉬워도 영웅(英雄)은 되기 어렵다”고 했다. 백 명을 당해내는 사람을 호(豪)라 하였고 열 명을 당해 내는 사람을 걸(傑 )이라 했으며 지력(知力)에 있어 만 명을 당해 내야 영(英)이라 했다. 삼국지에 보면 대장부도 많고 호걸도 많지만 영웅은 드물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영웅이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시내버스 안에서 기껏 소매치기 한 명을 잡은 청년을 왜 영웅시하고 있을까? 여기에는 각박한 현대 사회를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지나칠 정도로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써 가면서까지 구태여 영웅 대접받기를 꺼려하는 것이 통례다. 영웅이 되기 싫어서가 아니라 큰 위험부담을 자처하지 않으려 한다. 가급적이면 위험한 곳에 가지 않으려 하고 안전 위주의 삶을 영위하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청년은 자기 호주머니를 틀린 것도 아니고 특히 소매치기와 자기는 자기와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사이다. 그냥 모르는 체 하고 있어도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칫 어설프게 대들다가 소매치기가 휘두르는 칼에 중상이나 치명상을 입어도 어디 하소연 하거나 보상을 요구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오직 젊은이의 의무를 다 하는 용기를 발휘했기에 많은 국민들은 그를 현대판 영웅으로 칭송하고 있다. 만원 버스에서 누군가가 ‘소매치기’라고 외치면 대부분의 승객들은 자기 호주머니나 핸드백을 만져 볼 것이다. 그리고 안도의 숨을 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한 여유를 보일 것이다. 공연히 골치 아픈 일에 끼어들어 사서 고생하는 일에 말려들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청년은 결과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의협심보다는 그저 한 보통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 했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한 마디하고 자기 갈 길을 갔다. 우리 격언 중에 “일을 행하기 전에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초미가 급한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격언은 통하지 않는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세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즈’에 보면 “용감한 사람은 단 한 번 죽음에 직면하지만 겁쟁이는 죽기 전에 여러 번 죽음에 직면케 된다”라고 홍보하고 있다. 우리는 요령과 약삭빠름만이 통할 수 있는 현실에서도 가끔씩 선량한 시민으로서의 의로운 일에 자구행위(自救行爲)를 몸소 실천하는 용감한 청년 같은 사람을 발견하게 되고 그를 통해서 가슴이 찡한 감동을 받는다. 이런 사람이 바로 영웅이 아닐까 싶다.
최종편집: 2025-05-10 04: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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