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의 역사와 문화, 전설을 담고 있는 문화유산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매년 문화재를 배경으로 야간에 개최돼온 고택음악회가 남산공원에서 열렸다.
9월 30일 저녁 7시 남산공원 남산루앞에서 열린 이날 음악회는 김천시가 주최하고 김천시의회의 후원으로 김천문화원이 주관한 행사로 시민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난타와 성악, 가요, 민요, 전통무용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이기양 문화원장은 인사말에서 “작은 음악회를 통해 자랑스러운 우리 고장의 문화유산을 잊지 않고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뜻깊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특별히 일반 음악회와 달리 고택음악회는 공연 중간에 해당 문화유산에 대한 역사와 전설을 덧붙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에도 송기동 사무국장이 남산공원과 남산루에 얽힌 옛이야기를 곁들여 흥미를 더했다.
설명에 따르면 남산공원과 연결된 고성산은 예부터 풍수지리설로 볼 때 열두 띠 가운데 첫 번째 동물인 쥐의 형상이고 인근의 노실고개는 “늙은 쥐가 밭으로 내려온다”는 노서하전형의 명당으로 알려져왔다. 이때 밭으로 내려오는 쥐의 왼쪽 발이 현재의 시립도서관 언덕이고 오른쪽 발이 이곳 남산에 해당해 이러한 이유로 주민들은 남산과 개운사를 연결하는 고갯길을 낮추지 않고 우회하여 다니는 수고로움을 감수했는데 일제강점기인 1916년 김천에 정착한 일본인들이 명당의 기운을 끊기 위해 개운사 앞을 파내어 도로를 내고 남산에 신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현재 남산공원 내에 있는 고목 벚나무들이 그때 일본인들이 심은 나무이고 신사로 올라가는 입구에 계단과 석등, 돌다리를 설치하는 등 대대적인 성역화 사업을 벌여 1928년 정식 신사로 승격시켰다.
이후 일본의 각종 기념일마다 김천지역 학생과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신사참배를 강요했는데 1945년 광복과 동시에 김천신사의 모든 건물은 철거되고 현재는 석등 5기와 돌계단만이 남았다.
또 남산루는 원래 일제강점기 때 교동 김산군 관아에 있던 객사 건물인 금릉관을 이전한 것인데 한국전쟁 중에 폭격으로 소실됐고 남산동 출신 재일교포 사업가 배현익 선생이 훗날 고향을 방문했을때 누각이 불탄 것을 알고 어릴 때의 추억을 기념해 1억 원을 찬조해 1984년 건립하고 김천시로 기부채납을 했다.